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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마을 이야기

  • 소우당
  • 조회 2081
  • 2014.12.23 11:32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에 있는 산운마을. 마을 지명은 신라시대부터 마을뒷편의 금성산 수정계곡(水淨溪谷) 아래 구름이 감돈다하여 산운(山雲)’마을이라 불렸다. 조선 명종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이광준(李光俊)이 이곳에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조성되었고 이후 약 400년간 영천 이씨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모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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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마을은 과거시험 급제자와 인재를 다수 배출하여 양반 마을혹은 대감 마을로도 불려졌다. 사진에 보이는 산이 금성산으로 해발 531m의 높지 않은 산이나 백두산보다 더 오래된 화산 지형으로 중생대 백악기(7천만년전)에 생성됐다. 

의성 산운리는 입지적으로 금성면 소재지에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뒤로는 금성산을 업고 옆으로는 비봉산이 있으며 마을 뒤쪽으로 수정1리와 수정사가 있다. 의성내에서 대감마으로 불리는 전통반촌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영천이씨집성촌이다. 

지방유형문화재 제 242호인 학록정사를 비롯한 운곡당등의 전통고가옥 40여동이 현존하며, 조선조 이광준부사, 이민성참의, 이희발판서, 한일합방시 애국지사로 건국공훈을 세운 이태직등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다. 마을 안쪽 금성산계곡에는 신라 신문왕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수정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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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는 학록정사가 도유형문화재 242호로 조선 영조 26년 건축되었고, 점우당이 도전통건조물 12호로 근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소우당이 도전통건조물 13호로 조선시대로만 추정되며, 운곡당이 도전통건조물 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산운리는 신라시대 불교가 성할 때 수정계곡아래 검은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마을이름을 산운이라 하였다. 영천이씨의 입향조는 학동이광준이며, 조선 명종때부터 영천이씨가 산운리에 거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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